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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별곡 (14) - 로이다, 한양으로 떠나다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4-09-22 13: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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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호] 로이다, 한양으로 떠나다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으면 서울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신다...
[제49호]

로이다, 한양으로 떠나다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으면 서울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신다.  이제 자신들의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싶으실 만도 한데 손주들 욕심이 유난히 많으신 우리 시부모님은 언제나 그렇게 여름방학 되기만을 학수고대 하신다.  특히 어머님은 서진이를 두 살 때까지 키우셔서 그 정이 남다르시다.  

  서진이가 혼자였을 때는 아이를 서울에 보내놔도 전혀 문제가 없었으나 진호가 태어난 이후 상황은 바뀌어 버렸다.  우리 시어머니가 진호의 무지막지한 힘과 삼천리 동서남북을 안가리고 날아다니는 동선에는 도저히 감당을 못하시겠다고 진호의 한양 입성을 거부하셨다.  남편과 나는 의례 방학만 되면 아이들을 서울로 뚝 떼보내 놓고 한껏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는데 큰 차질이 생겨버린 것이다.  

  어머니께 메이드를 딸려 보내겠다고 진호의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을 드리니, '진호도 벅찬데 손님까지 와 있으면 그걸 내가 어찌 감당하겠냐'시며 펄쩍 뛰셨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사람을 두 달여 데리고 있을 생각 하시니 앞이 깜깜해지신 모양이다.  음식은 어떻게 해서 먹일 것이며, 잠은 어떻게 재울 것이며, 관광은 어떻게 시킬 것이냐며 어머니는 걱정을 태산같이 하셨다.  다 필요 없고, 편하게 우리나라 가정부 생각하듯 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결국 진호와 메이드는 두고 서진이만 보내라고 매듭을 지으셨다.

  다급해진 건 이제 나였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은 남편도 이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쪽으로 돌아서서 '자기 생각만 한다'고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나는 아니다.  가장 필요할 때 내 편이 되어주는  시누가 어머니 옆에 있었다.  시누이를 설득해 결국 어머니를 설득시키는데 성공했다.  서울로 향하기 며칠 전,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내게 헐레벌떡 전화를 걸어왔다.  아는 분이 메이드를 서울에 데리고 갔는데 메이드가 자기는 서울이 좋다고 허구한 날 노래를 부르더니 어느 날 밤에 장롱 깊숙이 숨겨놓은 여권을 어찌 찾아냈는지, 어둠을 틈타 잠적해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로이다에게 한국에서 잠적한 필리핀 메이드들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지, 지하 감방에 들어가 매 맞는건 고사하고라도 중노동에, 동물취급까지 받는데다 언제 필리핀으로 돌아갈지도 모른채 살아가고 있다고 공갈에 협박까지 해 뒀다.  가뜩이나 겁 많은 로이다는 다시 잔뜩 겁을 집어먹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애들 여권에 로이다 여권까지 꼭꼭 챙겨 우리 가족은 모두 대한항공에 올랐다.  그런데 우리 로이다는 집을 떠나자마자 마음도 같이 떠나 그녀가 왜 우리 가족과 여행을 시작했는지 망각해 버렸다.  체크인을 할 때도, 이민국 통관을 할 때도 그녀의 눈은 첵랍콕 공항이 좁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막둥이 진호를 쫒는 게 아니라, 여행을 앞 둔 한 여행객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그 시간들을 설레고 즐기며 무척 행복해 했다.  나는 지금 네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생각도 좀 하면서 앉아 있으라고, 얘길 해도 그녀는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시 똑 같은 모습으로 애들과 똑 같이 마냥 들떠 있었다.


  
나는 야 자유인

  아이들과 로이다를 한국에 두고 나는 바로 홍콩으로 돌아왔다.  로이다에게 네가 서울에 있지만 네가 해야 할 일은 홍콩에 있을 때와 똑 같다.  아이들 돌보고, 할머니 일 도와 부지런히 일해라, 고 일렀다.

  그녀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어머니가 이른 아침 일어나 아침 밥 다 지어 놓으면 서진이 진호와 함께 느지막이 일어나 제일먼저 아침상을 받았고, 가족이 밥을 다 먹으면 설거지를 뚝딱뚝딱 해 놓은 후 할머니에게 진호를 맡기고는 할아버지를 따라 등산을 다녔다.  그러다 나중에는 아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산으로 나섰다.  등산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는 로이다가 몇 번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더란다.  나중에는 할아버지가 안가더라도 자기 혼자서 룰루랄라 경쾌한 걸음으로 등산을 다녔다고 한다.

  하루는 어머니가 성당에 일이 있어서 일찌감치 진호를 맡기고 나가셨단다.  오후가 돼서 돌아오니 로이다가 잔뜩 화가 나서 퉁탕퉁탕 성질을 부리더란다.  그렇게 아침마다 등산을 즐기던 로이다에게 등산얘기만 하면 벌벌 떨게 하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으니...



불청객

  우리 로이다는 얼굴이 통통하고, 다른 필리핀 사람들에 비해 얼굴이 희고 작아 꽤 이쁘장 하다.  그런 동남아 여자 하나가 매일 아침마다 같은 길로 산을 오르내리니 단연 눈에 띄었으리라.  그날도 로이다는 산으로 나가고 어머니는 애들 둘 데리고 아침밥을 짓고 계셨다.  그런데 밖에서 아침부터 뭔 소리가 들리는데 얼핏 로이다 목소리와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철부지 로이다가 또 할아버지하고 장난하고 섰나 싶어 내다보지를 않으셨다.  로이다가 외치는 '할머니'소리가 비명에 가까워 어머니가 헐레벌떡 달려 나가보니 문간에 왠 초췌한 중년 남자가 로이다를 희롱하고 서 있었다.  로이다는 겁에 질려 벌벌 떨며, 눈물을 줄줄 흘리며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저 여자랑 할 얘기가 있다며 버티고 서서 갈 생각을 않자 어머니가 소리를 질러 내 쫓아 버렸는데도 한참 동안 집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장가 못간 노총각들이 필리핀 여자들을 데려다 장가간다는 소리를 듣고 로이다를 업어다 장가들 심산인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시누이는 이 소리를 듣고, 한국 남자망신에, 나라망신까지 다 시킨다고 펄쩍 뛰었다.  그렇지만 그 불청객 덕분에 우리 로이다의 이른 아침 등산행도 막을 내렸으니 어머니로서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아니, 그게 아니었다.  여우 굴 피하니 호랑이굴 만난다고, 등산으로부터 멀어진 로이다는 결국 다른 일거리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불청객에게 겁을 먹은 로이다는 그 다음날로 두문불출 했다.  그런 로이다가 불쌍해서 어머니와 아버님, 때로는 우리 시누이들이 로이다를 데리고 놀이공원도 데리고 가셨고, 동대문 시장으로, 백화점으로 쇼핑을 다니셨다.  동대문시장, 우리 로이다가 바로 이 동대문 시장에 맛을 들였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동대문 시장엘 다녔는데, 어머니는 늘 얘가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나, 이상한 애들 만나서 물들면 어쩌나 하며 가슴을 졸이셨다. 그러나 우리 로이다는 전혀 아랑 곳 하지 않고 주인 없는 서울에서 나름대로 자유를 만끽하며 지냈다.

  가끔 어머니께 전화해서 로이다에 대해서 물으면, "지 밥그릇 하나만 열심히 잘 챙긴다"고 하셨다.  어머님이 얘기하는 '지 밥그릇'이라함은 바로 우리 진호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다.                                                             

                                                                                                                                     / 계속...
                                                                                                                                    <글 : 로사>
* 위클리홍콩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5-12-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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