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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우리말 사냥] 나는 순우리말 숫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위클리홍콩
  • 등록 2021-03-23 15:07:19
  • 수정 2021-03-23 15: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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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역사를 말할 때 한자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한자어는 우리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반도 역사의 태동기부터 우리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경제•문화 그리고 언어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분야들에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자어의 영향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으나 사실 그 시기의 영향은 극히 미미하였다. 본격적으로 한자어가 우리말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였다고 학자들은 흔히 이야기한다.

 

역사서에 보면 신라의 지증왕은 즉위 직후 그동안 마립간이라고 불리던 나라의 우두머리를 ‘왕(王)’이라고 칭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서라벌로 불리던 국호를 ‘신라(新羅)’로 변경하였으며, 지방 제도를 체계화하여 ‘주(州)’ ‘군(郡)’ ‘현(縣)’으로 나누어 관리하였다. 지역 이름이 한자로 바뀌게 되면서 본관을 중시하여 붙이던 성씨 역시도 점차 한자어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후로 우리말과 한자어는 서로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어휘 체계는 대등하게 공존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한자어가 고유어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배타적으로 존립하기도 하였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한자어 숫자와 순우리말 숫자가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배타적으로 존립하는 경우에 해당하는데, 한자어 숫자는 주로 숫자의 크기를 나타내거나 계산할 때 사용하며, 순우리말 숫자는 그 크기나 순서를 셀 때 사용한다.

 

‘하나’부터 ‘마흔’ 정도까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50에 해당하는 ‘쉰’부터는 정확도 면에서 조금씩 헷갈려 하시는 분이 많을 것 같다. ‘쉬흔’이니 ‘시흔’이니 하는 경우도 많으며 ‘예순’, ‘일흔’, ‘여든’, ‘아흔’ 등도 정확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 ‘셈’의 영역도 최근에는 한자어 숫자가 대체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물론 숫자 셀 때 스무 개 이하를 한자어 숫자로 세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스무 개를 넘어서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스물두 개’를 ‘이십이 개’로 말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으며 ‘서른 개’부터는 ‘삼십 개’ 등으로 말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렇듯 순우리말 숫자가 가졌던 배타적 영역을 한자어 숫자가 조금씩 빼앗기 시작한 것은 사실 꽤 오래된 일이다. 이미 순우리말 숫자는 100 이상부터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을 인지조차 못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그리고 100에 해당하는 순우리말 숫자가 ‘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온’의 용례는 실생활에서는 아직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인데, ‘온누리’, ‘온통’, ‘온갖’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온’이 숫자 100을 뜻하는 ‘온’이며, 여기에서는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혹은 ‘넓고 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숫자 1,000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은 ‘즈믄’이다. 그래서 2,000년도에 태어난 아기를 우리가 ‘즈믄둥이’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숫자 10,000(만)에 해당하는 단어는 ‘골’이다. ‘골백번’이라는 단어에 ‘골’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 외에 다른 용례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숫자 100,000,000(억)에 해당하는 단어는 ‘잘’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부사 ‘잘’이 숫자 억에서 온 단어이다. ‘좋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상상조차 힘든 큰 단위의 숫자를 사용하여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1,000,000,000,000(조)에 해당하는 순우리말 단어는 ‘울’이다. 아쉽지만 이 단어는 실생활 어떤 용례에서도 찾기가 어려워 사어로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지난주에도 이야기했지만, 대세를 거스르기는 어렵다. 우리말에 외래어가 많아지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라면 일정부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것을 바르게 알고 새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내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천양지차이다. 또한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 가진 내 것을 공고히 하는 것이 더 쉬운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어설프게 따라하는 영어보다는 확실하게 정립된 우리말에 대한 지식이, 세계화 시대에 우리를 더 가치 있게 하고 빛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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