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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우리말 사냥] 난 착한 놈일까, 나쁜 놈일까? 나의 정체성을 찾아서...
  • 위클리홍콩
  • 등록 2020-12-08 15: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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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절부절

 ① “너 왜 똥 싼 강아지마냥 안절부절하냐?”

 ② “너 왜 똥 싼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냐?”

 

글의 서두부터 ‘똥’을 언급해서 좀 불편해할 분들이 많겠지만, 더 불편한 것은 이 어휘의 정의와 용례이다. 정답은 이미 제목에서 힌트를 얻었겠지만, ②번 표현만 사용이 가능하다. 사실 언중들 뿐 아니라 언론까지도 간혹 ‘안절부절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①번 표현을 왜 사용할 수 없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일단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자. 하지만 그럴 만도 한 것이, 앞에서도 언급했듯 ‘안절부절’이라는 어휘는 사전적 정의부터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휘의 정의나 용례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안절부절’은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이라고 정의돼 있으며, ‘안절부절 못하다’는 동사로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사전적 정의에서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기본 어휘와 부정 어휘의 의미가 같다는 데 있다. 쉽게 말해 ‘예쁘다’와 ‘예쁘지 않다’가 같은 뜻이라는 말이다. 이게 속된 말로 말인지 방귀인지...

 

어휘의 용법이 이렇게 굳어진 데는 물론 언중의 오랜 언어 습관이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끝까지 관습을 지킬 것을 고수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이 경우는 어휘의 정의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용례에 관한 법칙을 수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 중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있듯, 용례에 대한 수정 전까지는 어법에 맞게 사용해야 주는 맞을 듯하다.

 


2. 어줍다

① “괜히 어줍게 해서 일 망치지 말고, 나한테 맡겨.”

② “괜히 어쭙잖게 해서 일 망치지 말고, 나한테 맡겨.”

 

이 경우는 두 가지 용례가 모두 사용 가능하다. 둘 다 사용 가능하다고 해서 이 어휘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역시도 기본 어휘와 부정 어휘의 의미가 같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심지어 이 어휘는 기본형과 부정 어휘의 형태가 다르기까지 하다. 

 

우선 ‘어줍다’의 경우, ‘말이나 행동이 익숙지 않아 서투르고 어설프다’의 뜻을, 그리고 ‘어쭙잖다’도 ‘아주 서투르고 어설프다. 또는 아주 시시하고 보잘 것 없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서로 반대의 형태를 가진 두 어휘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참고로 ‘어쭙다’라는 어휘는 없으므로 ‘어쭙잖다’는 ‘어줍다’ 어휘에 ‘-지 않다’가 붙으면서 경음화된 것으로 보면 된다. 

  

이 어휘도 정체성 정립이 굉장히 시급해 보인다. 

 

3. 얼토당토

① “그 얼토당토한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② “그 얼토당토않은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몇 번이 맞을까? 정답은 ②번이다. ‘얼토당토’는 ‘어울리지도 합당하지도’가 오랜 시간 사용되어 오면서 축약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통사구조상 ‘얼토당토’ 뒤에는 ‘-하다’가 붙을 수는 없고, ‘-않다’가 붙어야 맞는 표현이 된다. 하지만 부정형태로만 사용되는 이 어휘의 특성상, 언중의 언어생활을 많이 혼란스럽게 하는 어휘라는 사실은 분명한 듯 보인다.

 

4. 우연히

① “길에서 우연히 옛 스승님을 만났다.”

② “길에서 우연찮게 옛 스승님을 만났다.”

 

역시 기본 어휘와 부정 어휘의 뜻이 같은 경우이다. 이 경우는 둘 다 표준어로 인정된다. 사실 이 어휘의 경우는 ‘우연히’의 뜻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사용하고 있음에도 이런 상반된 어휘를 혼동하여 사용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 경우는 의미를 좀 더 강조하여 표현하고 싶은 언중의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지난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 ‘칠칠하다’와 ‘칠칠치 않다’도 이 어휘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한류와 함께 한글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또 배우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 명의 한국어 교사로서, 이렇듯 정립이 덜 된 어휘를 가르칠 때는 가끔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위에 소개한 어휘들은 고급반 학생들에게나 소개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자주 내 마음을 때리지는 않지만, 일전에 소개한 ‘몇일’과 ‘며칠’은 초급부터 등장하는 어휘이기 때문에 매번 설명하기 쉽지 않고 또 그래서 미안하다. 

 

 

물론 한글과 한국어 자체가 굉장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글자이며 언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런 작은 어휘적 문제점을 가다듬는다면 좀 더 훌륭한, 그리고 세계적으로 더욱 빛나는 언어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국립 국어원에서 조금만 더 열심히 일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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