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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영의뉴스레터 - ‘대통령’의 잘못된 탄생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8-11-13 10:08:10
  • 수정 2018-11-13 10: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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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대통령중심제(책임제)’라고 부르는 정치체제를 만든 나라는 미국입니다. 독립국가를 건설하면서 새로운 정치제도를 창안하고는, 국민이 뽑은 국가 대표자를 어떤..
우리가 ‘대통령중심제(책임제)’라고 부르는 정치체제를 만든 나라는 미국입니다. 독립국가를 건설하면서 새로운 정치제도를 창안하고는, 국민이 뽑은 국가 대표자를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 고민했습니다. 군주가 지배하던 ‘구대륙’ 유럽의 봉건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용어로 생각해낸 게 ‘president’입니다. 어원(語源)인 ‘preside’는 ‘회의를 주재하다’는 뜻이니까, 말 그대로 ‘회의주재자’라는 의미를 담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명칭을 메이지유신 시절 일본이 ‘대통령(大統領)’으로 번역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 쓰고 있습니다.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 ‘크게(大) 거느리고(統) 다스리는(領) 사람’으로 바뀐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왕이 존재하고 있는 일본이 자기나라 관점에서 옮긴 봉건주의적 용어를 그냥 베껴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1월9일자 A27면 기사 <“대통령 ‘각하’와 ‘님’처럼 언어는 늘 줄다리기 해왔죠”>는 우리 사회가 무심코 쓰고 있는 언어표현의 문제를 성찰하게 해줍니다. 신지영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대통령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에게 남겨진 순화대상 용어”라며 ‘대한민국 대표’라고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합니다. “온갖 기업들마다 ‘대표’가 넘쳐나는데 어찌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든다면, 백악관 말고도 조그만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president’가 넘쳐나는 미국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신 교수는 이밖에도 바로잡아야 할 언어표현들의 문제를 다양하게 파고듭니다. ‘미망인(未亡人)’은 ‘(남편을 따라서 죽었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 죄인’이라는 뜻이고, ‘과부(寡婦)’는 ‘남편이 죽어서 이제 부족한 사람이 됐다’는 의미의 표현입니다. “이혼한 사람은 미혼/기혼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는 결혼유무(有無)를 묻는 이력서 항목에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통념의 벽을 두들깁니다. 더 나아가 ‘마땅히 결혼해야 하는데 아직 하지 않았다’는 뜻을 담은 ‘미혼(未婚)’이라는 표현이 괜찮은 건지도 묻습니다.

“우리의 언어 속에는 위험하고 폭력적인 언어들이 가득하며, 차별과 비민주적 표현을 담은 언어들이 은연중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지배한다”는 게 신 교수의 경고입니다. 낡고 차별적 뜻을 담은 표현의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언어로 쓰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줍니다.

한경 11월9일자 A26면 기사 <비판적 사고의 힘…인문학도, 실리콘밸리 취업문 뚫다>는 비판적이고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새기게 합니다. “미국 대학연합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용주의 93%는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명확하게 소통하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학부 전공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했다.”

실리콘밸리의 상당수 기업 간부들은 인문학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인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대목은 통념을 깨뜨리게 합니다. 높은 취업문턱을 넘지 못하는 인문계열 전공자들이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자조하는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이학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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