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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홍콩유감 [有感]- 6. 여름 방학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06-06-22 11:5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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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0호, 6월23일]   1973년의 석유파동의 여파(餘波)인 55일간의 긴 겨울방학에 보조 맞춘 1달이 겨우 될까 말까한 여름 방학..
[제130호, 6월23일]

  1973년의 석유파동의 여파(餘波)인 55일간의 긴 겨울방학에 보조 맞춘 1달이 겨우 될까 말까한 여름 방학은 초등시절 내내 일식집의 밑반찬같이 정말 감질나기만 했다.  문교부에서 나온 방학책과 학교선생님들이 내주신 숙제를 하다보면 어느새 입추가 지나고 광복절, 처서(處署) 무렵이면 개학이 내일이곤 했다. 7.30 교육개혁 조치로 과외가 전면 금지되었던 1980년의 여름방학은 중3이라 단 17일 뿐, 보충수업과 체력장 연습이 이어진 후 곧바로 개학했다.

  골대에 슛이 들어가면 '골'이요 실패하면 '노 골' 이란 정도에다 '오프사이드'가 뭔지도 얼마 전에야  알게 된 수준의 지식으로 축구를 보는 나의 눈엔 '데이비드 베컴'은 참 얄밉다.  같은 미드필더인 '박지성' 선수나 포루투칼의 '피고'같이 몸 바쳐서 싸우지도 않으며 이리저리 슬슬 왔다 갔다 하다가 코너킥이나 프리킥 같은 폼 나는 기회가 오면 쓱 나타나 한 번 멋들어지게 공이나 차고. '내 이름은 김삼순' 의 '삼순' 이 말마따나 잘생긴 애들은 땀도 안 나는지 경기 내내 말끔한 외모와 멋진 헤어스타일은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다.

  우리 집 방과 욕실이 있는 복도 벽에 떡 하니 붙어있는 '밤을 잊은 함성' 이라는 제목의 월드컵 야근표를 보면 그 기간은 한 달 남짓, 1년의 12분의 1이니 참으로 무시 못 할 시간이다.  다행히 큰 애는 5월에 이미 중요한 시험을 다 끝낸 상태이고 딸애 또한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예회를 남겨두고 있을 뿐이어서 너무 늦게 잠들지 않도록 신경 쓸 뿐 월드컵 시청은 비교적 자유롭게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그러나 엄마인 난 입장이 엄연히 다르다.  아이들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하기 힘든 집안일도 미리미리 해 놔야하고 이젠 더 이상 마냥 놀게 할 수만은 없는 큰 아이 공부 시킬 계획도 잡아야 하고 9월이면 중학생이 될 작은 아이 방학동안 배우고 싶다는 특별활동도 알아봐야 한다.  작아진 아이들 여름옷, 연령대 지난 동화책이나 장난감도 솎아내 필요 한 이에게 전달해 줘야하며 근 두 달 넘게 미뤄둔 아이들 새 여름옷과 소품도 구입해야한다.

  "지난 십 년간의 여름방학 때마다 너만큼 맘껏 논 아이 있으면 내 앞에 데려와 봐" 얘기할 만큼 마냥  놔뒀던 큰 애는 마침내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는 시기에 도달하고 말았다.  주변 엄마들의 얘기나 분위기는 차치(且置) 하고라도 그 아이의 학년 앞에 놓인 숫자가 "그냥 두면 안 돼!" 나에게 자꾸 다그친다.  남들은 4,5월부터 계획하고 결정해 논 일을 월드컵이 막 시작된 시점에서부터 부랴부랴 옛 친구들을 통해 정보 얻고 문의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베컴이 나오는 잉글랜드의 첫 경기는 무조건 봐야했고 네덜란드는 히딩크의 나라라서, 호주 역시 히딩크가 감독이어서 뜨거웠던 화요일 밤의 우리나라 첫 경기는 온 가족이 발 구르며 손뼉 치며, 이어진 심야의 프랑스와 스위스 전은 우리나라와 같은 조라 결과가 너무 궁금해서…  봐야만 하는 이유가 왜 그리도 매번 꼭 있는지...  영국의 두 번째 경기에선 남편과 아들이 다 포기하고 잠에 떨어진 후에도 평소 늦게 자는데 이골이 난 나 혼자 잉글랜드의 후반 2골을 지켜봤다.  동시에 이제 명실 공히 예비수험생의 대열에 들어선 아들의 방학계획을 세우느라 남들 하루에 자는 잠을 2,3일로 나누어 자길 몇날 며칠, 아직도 월드컵의 대장정은 2주 이상 창창하게 남았으니 여기서 한 번 조용히 숨을 고를 필요를 절실히 느낀다.

  이젠 이곳에도 엄연히 4계절이 있음이 여실히 느껴지지만 그래도 홍콩의 여름은 꽤나 길고 습하다. 게다가 유치원생을 제외하곤 아이들의 방학은 보통 7주 남짓, 너도나도 자신의 본향으로 향하며 타지에 나가 공부하던 학생들은 둥지를 찾아 홍콩으로 모여든다.  그래서인지 이런저런 이유로 뜨지 못하고 이 곳에 남은 이들은 8월 중반 정도 되면 뒤쳐져 남겨진 것 같은 이상한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속으로 부러워하는 이들은 여름이나 기타 휴가 때면 친정이 너무 편해 그저 처음부터 개학 임박해서까지 꽉 찬 배추 속처럼 오롯이 우리나라에 머무는 엄마들이다.  게다가 그녀들의 대부분은 이 곳에서도 궂은 집안일은 생전 할 필요가 없는 듯 나완 때깔부터 다른 것이 곱고 우아하기만 하다.  고국에 다녀오면 고향물이 좋긴 좋은지 그 우아미는 더해지고…  갈 집은 많되 맘 편히 있을 곳은 없다며 난, 가고 싶은 맘을 자주 접는 편인데 사십이 넘고 보니 마음 접는 일도 예전 같지 않다.  2년 전 까지만 해도 몇 년 씩 안 가고도 그다지 아쉽지 않았건만 워낙 옛날부터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혹한의 겨울만 빼곤 우리나라의 이것저것이 항상 그립다.

  애들 방학은 어찌 보면 엄마들에겐 더 바쁘고 괴로울 수도 있지만, 애들도 나도 학교 스케줄, 특별활동이나 숙제, 취침 시간 등 이것저것에 얽매여 쫓기지 않아도 되니 너무 풀어지지만 않는다면 난, 그래도 방학이 있어 참 좋다.  아이들이 웬만큼 컸으니 하는 소리지 하겠지만….  이번 여름엔, 큰 애는 십 년 간 이미 잘 놀았으니 공부 좀 시키고 작은 애는 원하는 활동만 최소로 하고  웬만하면  그냥 놔둘 생각이다.  더불어 엄마인 내 생활도 좀 쭈욱 늘여서 느슨하게 유유자적(悠悠自適) 하고 싶다.

아이들이 읽는 위인전인 '벤쟈민 프랭클린' 에서 본 그의 어록(語錄) 중 하나,
"Fish and visitors stink in three days."

  시댁이든 친정이든 기타 친척 집이든 어쨌든 이 혹서(酷暑)에 '내 집이 아닌 어딘가'에서 얼마간 아이들까지 데리고 머물게 될 우리들이 한 번 되새겨 봐야 할 말인 듯싶다.

  그나저나 우리나라가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뽑아내 기쁘긴 한량없으나 난 또 고민한다.  아들애에게 토요일 새벽 3시의 스위스 전을 봐도 된다고 해야 하나, 토요학교 가야하고 저녁 때 친구 생일파티도 있으니 참았다 경기 '하이라이트' 보라 해야 하나.

모두들 나보다 훨씬 더 잘들 하고 계시겠지만, 방학 계획도 아이의 성향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초등생의 경우, 어린 동생이 있어 엄마가 힘든 상태이며 아이가 무척 활동적이라 조금만 집에 가만둬도 지루해하며 가만있지 못해 집에서 엄마에게 자주 혼나는 아이는 3,4주의 여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것이 엄마나 아이나 서로 행복으로 가는 방법이다.

  반면, 서두르는 것을 싫어하고 차분하며 집에 좀 둬도 자근자근 책도 읽고 놀기도 하고 비디오도 보면서 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는 아이는 아이가 배우기 원하는 것이나 엄마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최소 분야만 매이는 스케줄을 잡고 그냥 좀 자유를 맘껏 주라고 권하고 싶다.  가끔씩 지루해하면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학기 중 움직이기 힘든 곳을 데리고 가는 등 종종 작은 이벤트를 만들면 되고.

(계속) 글 ; J.Y. J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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