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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서 말하는 방어 (Defence)란 큰 그림에서는 소송에서의 방어전략 (Defence Strategy)을 말하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법률상의 방어를 말합니다. 법정 변호사라는 직업에 특정하게 적용되는 규칙 중에는 "의무적 수임규칙" (Cab-rank rule)이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자신이 능력이 허락하는 분야의 사건을 누군가 의뢰하여 온다면 의무적으로 해당 사건을 수임해야 한다"라는 규칙입니다. 즉, 법정 변호사로 일한다는 것은 때로는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다해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원하지 않는 사건이라도 "의무적 수임규칙"에 의해 피고 또는 원고의 입장에서 공격 또는 방어를 해야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변호인의 피의자신문참여권" (Right to Counsel)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아무리 반인륜적이고 반도덕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올바른 사법절차와 재판을 통해 유죄판결을 받기 전에는 피의자 (Accused)일 뿐이며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국가의 사법기관과 절차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국가에서 일부러 국선 변호사 (Duty Lawyer)를 선임해 피고의 변호를 맡게 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무엇이든 어려운 것이 더 재미있는 법입니다. 소송을 시작하는 원고 측 변호인, 즉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입장이라면 준비과정도 쉽지만 그만큼 지적인 흥미도 제한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피고 측 변호인을 맡게 되었다면 그만큼 어려움이 많지만 일에 대한 흥미도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법에서 말하는 방어 (Defence)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절차상의 방어 (Procedural Defence)라고 합니다. 법리에 의한 방어가 아닌 순수 민사소송절차에 의존한 방어전략을 말합니다. 간단한 예로는 시효기간 (Limitation Period)에 의한 절차상의 방어가 있습니다. 시효가 6년인 사건에서 소송을 6년 1개월이 지나 시작하였다면 그 아무리 승소가 확실한 소송이라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바로 이번주의 주제인 법리상의 방어 (Legal Defence)입니다. 순수한 법리 (Legal Principle)에 의해 방어를 한다는 개념으로, 피고소인을 변호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법리상의 방어는 역시 두 갈래로 나누어 지는데, 바로 긍정적 방어 (Positive Defence)와 부정적 방어 (Negative Defence)입니다. 긍정적 방어란 원고의 주장에 법률상 직접적인 반대입장을 표하여 방어해 나간다는 뜻으로, 어떠한 사실자체는 인정하나, 그것이 법률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실 또는 행위였다는 것을 주장하는 방어입니다. 간단한 예로는 정당방위 (Self-Defence)가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범죄 중 가장 그 죄질이 무거운 살인 (Murder)이라는 범죄에 대한 방어로, 누군가를 죽인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저지른 일, 즉 정당방위라는 긍정적 방어 (Positive Defence)였다는 것이 성립된다면 모든 법률상의 책임이 해명되는 것입니다.
부정적 방어 (Negative Defence)의 경우에는 원고의 주장에 법리상의 방어는 아니지만 사실관계상의 반대입장을 표하여 방어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원고가 빌려준 돈을 되찾고자 소송을 시작하였으나, 사실상 돈을 빌려준 적이 없다거나,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관계상의 부정적 방어 (Negative Defence)를 통하여 변호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법리상의 방어는 수 많은 법률에 항상 존재하는 예외 (Exception)라는 것에 근거하여 만들어집니다. 폭행 (Battery)이라는 불법 행위에 대한 방어로는 "동의" (Consent 또는 라틴어로 Volenti non fit injuria)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은 법적인 책임이 따르는 행위이지만 만일 피해자가 자신을 때려달라고 했다거나, 자신이 폭행당하는 것에 자발적으로 동의를 하였다면 법적인 책임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여 과실" (Contributory Negligence)과 관련된 방어의 경우, 민사상의 과실적 책임이 온전히 피고에게 있는 것이 아닌 일정 또는 상당 부분 원고에게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는 방어로서, 민사상의 책임을 전가하는 원리의 긍정적 방어입니다. 1989년 고등법원 판례인 캡스 v 밀러 (Capps v Miller)는 "기여 과실"에 의한 손해배상 삭감이 인정되었던 사례입니다. 원고인 캡스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던 중 빨간불에 걸려 오토바이를 정지한 채 서있었고, 뒤에서 음주운전을 하던 밀러는 자신의 차로 뒤에서 캡스의 오토바이를 박았던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캡스는 뇌에 중상을 입었고, 밀러의 과실은 상당부분 인정되었지만, 법원은 본 사건에서 캡스에게도 일정부분 과실이 있다고 판단하여 "기여 과실" 방어를 인정했습니다. 바로 오토바이를 타던 캡스는 안전모 (Safety Helmet)를 쓰고는 있었지만 해당 안전모의 끈을 제대로 잠그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법원은 사고 당시 캡스가 안전모를 제대로 쓰고 있었더라면 사고의 심각성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였고, 피고에게 전체 손해배상금의 85%만 지불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이처럼 방어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법리상 인정된 방어를 통하여 개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변호사는 이러한 예측의 게임에서 진행 가능한 방어논리를 미리 생각해두고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동주 법정 변호사 (Barrister)는 Prince's Chambers에서 기업소송 및 자문을 주로 담당하고 있으며 임의중재를 포함한 국제상사중재, 국제소송 및 각종 국내외 분쟁에서 홍콩법에 관한 폭넓은 변호 및 자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동주 변호사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법을 잘 몰라 애태우는 분들을 돕고자 하오니 칼럼에서 다뤄줬으면 하는 내용, 홍콩에서 사업이나 활동을 하면서 법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 홍콩의 법률이 궁금하신 분들은 언제든 이메일을 통해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Kevin D. J. Lee
Barrister-at-law (법정 변호사)
Prince's Chambers (http://www.princeschambers.com.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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