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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한인여성회 KH Food 공동주최 제2회 홍콩한인 글짓기대회 성인부 금상 작 - 고향 가는 길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2-07-06 17:35:19
  • 수정 2012-07-12 1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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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9호, 7월5일
고향 가는 길

로사 권


 바람이 분다.

푸석 푸석 윤기 잃은 촌로의 성긴 머리와 땟국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낡은 옷자락을 이리저리 희롱하고 훌쩍 허공으로 치솟는 바람이 희망의 메시지라도 전하려는 듯 가을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그의 낯빛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 평화롭게 흐르는 구름, 가을 햇살보다 더 눈부시게 웃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어느 누가 원망의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사는 게 고달픈 사람의 머리 위를 지나 인생의 쓴 잔을 맛본 사람의 가슴을 훑고 휘휘 불던 바람이 햇살처럼 웃는 아이의 볼에 머무는 걸 보면서 지훈은 잠시 시름을 잊는다.

그들은 지금 다 합쳐야 삼십 호가 될까 말까한 고향 마을로 가기위해 버스정류장의 삐걱대는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연희의 고향이다. 살기가 힘들고 곤궁 할수록 고향이 그리움이 되고 위안이 된다고 했나. 연희는 부쩍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아련한 추억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 어머니의 오그라진 늙은 어깨에 더 깊은 어둠이 내리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지훈의 넓은 어깨에 연희의 묽은 침이 흘러 그의 옷을 적신다.

기름 냄새를 남겨두고 요란한 엔진소리를 달고 멀어져간 신작로에 연희를 업은 지훈이 버려진 짐짝마냥 뿌연 먼지를 온몸으로 맞으며 덩그마니 남겨져 있다. 지훈이 터벅터벅 걷는다.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난다. 옥수수수염 같은 연희 머리 위로 강렬한 오후의 태양열이 쏟아져 내린다. 길가에는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 쓴 마른 갈대가 바람결에 맥을 못 추고 하느작하느작 댄다. 세월이 흘러도 변화가 없는 고향 마을을 살피며 허물어질듯 말듯 서있는 집 마당에 들어섰다.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부엌에서 군불을 지피던 늙은 노인이 구부정한 허리를 뒷짐으로 감싸고 허둥지둥 걸어 나온다.

"그랴 그랴, 얼릉 들어오게. 어여 안으로 들어가. 고생이 많았겄네"
지훈은 허름한 방에 연희를 눕히고 서야 허리를 폈다. 허물 벗겨진 소나무에서 송진이 비죽비죽 나오듯 지훈의 이마에서 땀이 스믈스믈 배어나오고 있다. 굽은 허리로 가슬가슬한 이불을 꺼내어 덮어주던 노인의 움푹 페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안적 밥 안 먹었쟈? 금방 죽 끓여 줄 테니 쪼끔만 기다리게."

노인이 잘 펴지지도 않는 무릎을 일으키며 부엌으로 나가자 지훈이 따라나선다.

"아닙니다 어머니! 연희가 고향집에 가서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연희 옆에서 있어 주세요. 죽은 제가 끓이겠습니다."

지훈은 옷소매를 걷으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궁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매운지 지훈이 마른기침을 해댄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이 앙상한 노인이 어릴 적 연희에게 그랬듯 머리부터 얼굴, 손, 발에 이르기까지 마른 삭정이 같은 손으로 몇 번이고 어루만졌다. 굵게 페인 주름살 사이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낡은 치맛자락을 끌어다가 눈가를 꾹꾹 찍어내며 속에서부터 북받쳐 오는 울음을 삭힌다. 연희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베갯잇을 흠뻑 적신다.

한때는 만져보기 아까울 만큼 예쁘기고 총명한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수재소리를 들어가며 고등학교를 장학금으로 다녔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도 수석으로 입학할 만큼 총기가 남달랐던 아이였다. 연희를 며느리로 삼겠다고 우리 며느리로 달라고 동네 사람들이 통사정 했었다. 도회지로 부터도 중매도 끊이지 않고 들어왔었다. 그런 딸이 식물인간이 되어 똥오줌도 가리지 못할 몰골로 사위의 등에 업혀 돌아오자 노인의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동네 우물가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아낙들과 정씨네 사랑방에 둘러 앉아 투전판을 벌이고 있는 남정네들 사이에로 연희의 소식이 빨리도 퍼져 나갔다.

"얘기들 들었수? 서씨네 막내 딸 말이여. 산송장이 돼서 돌아왔댜, 이게 대체 뭔 일이랴"

"맞어유, 나두 저 위 신작로서 서방이 연희를 등에 업구 오는 것을 봤어유. 세상에나 그렇게 이쁘고 잘난 딸이 어째 그리 됐댜?"

"신랑이 홍콩하구 중국하고 왔다갔다 사업을 하다 된통 사기를 당했댜. 연희는 홍콩에서 적응을 못하고 살었다는 구먼. 그러다가 우울증에 걸려 지내다가 사기당한 충격으로 쓰러져서 저 모양이 됐다지 뭐여."

"그럼 연희는 살아날 가망이 있댜?"

"살 가망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왔겄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겄지. 오늘 낼 하나벼...."

"세상에. 이제 그 집 노인네 어찌살라구 그런댜, 참으로 불쌍하구먼."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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