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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홍콩한인 글짓기대회 학생부 은상 작] 또 다른 고향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2-06-25 11:33:19
  • 수정 2012-07-06 16: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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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8호, 6월21일
강수호


길거리 한 폭판, 촘촘한 건물들 틈에서 비추어 들어오는 하늘을 바라본다. 내 귓가를 맴돌며 춤을 추던 음악을 잠시 멀리한 채, 눈을 감아본다. 뚜벅뚜벅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바쁜 발걸음 소리. 째깍째깍 한없이 달려가는 시계를 뒤쫓으며 헐떡이는 거친 숨소리. 날갯짓하는 파리 마냥 주위를 어지럽게 맴도는 가지각색의 소음들. 이렇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소리가 답답한 공기를 통해서 내 귀에 전달된다.

다시 눈을 떠보니 그들이 보인다. 마치 투명한 어항 속에서 갇혀 사는 금붕어처럼, 그저 얽어맨 틀 안에서 빙글빙글 제자리걸음을 한다. 기억력이 짧은 것인지, 그냥 순진무구한 건지 몰라도, 어딘가에 홀린 듯, 정체성을 잃은 채 헤엄쳐 간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작은 물고기 한 마리, 방황하다 결국 초록 빛깔 달콤한 웃음을 짓는 여인의 유혹에 저버려 별 찻집에 들어선다.

향긋한 커피 냄새와 함께 번져 오는 잔잔한 음악 속에서, 나는 일단 긴장된 근육들을 풀기 위해서 푹신한 의자에게 안마를 받으러 간다. 내 가방 속에 있던 "윤동주 시집"을 꺼내어 잠시 문학을 음미하기로 한다. 달도 없는 캄캄칠야 같은 내 머릿속을 밝혀 주기에는 역시 독서가 으뜸이다. 시집을 펼치니 그 많고 많은 시들 중, 오늘따라 유난히 "또 다른 고향"이 눈에 쏙 들어왔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귀향 이후의 비애가 담긴 노래를 감상하며 잠시 명상에 잠긴다.

누구나 한 번씩은 받아본 이 질문 : "고향이 어디세요?". 이 질문을 내게 던질 때마다 나를 향해 강속구를 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하고 쉬운 물음 같아도, 나는 항상 대답하기 곤란해했다. 정말 피하고 싶은 이말, 식은땀마저 그새를 못 견디고 송골송골 도망가듯 밖으로 벗어 나온다. 정말 나를 당황하게 하는 이말, 마치 뒤엎힌 거북이처럼 우왕좌왕 몸부림을 치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지금 내 입안에서 따듯하게 풍기는 진한향기가 주산물인 나라. 불타오르는 삼바에 흠뻑 젖힌 나라. 관중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트리는 축구 강국. 그곳은 다름이 아닌 바로 내가 태어난 나라. 브라질, 나하고 우연히 엮였지만 큰 인연이 없는, 태어나서 자란 곳이지만 고향의 푸근함과 설렘을 느끼지 못하는… , 나에게는 그저 스쳐 가듯 지나친 차가운 낯선 사람에 불과하다. 그곳은 과연 참된 내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철새같이 살아온 나의 인생. 어렸을 때부터 떠돌이 새 못지않게 이곳저곳을 세계 일주 여행하듯 살아온 나. 마치 바람을 타며 휘날리는 민들레씨 마냥 자유롭게 비상을 했다만, 아직은 낙하를 하지 못한 씨앗. 나는 이렇듯 세월을 걸쳐 아름다운 추억으로 깊이 내려친 뿌리, 정으로 맺혀진 봉오리에서 피어나는 꽃이 없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 "또 다른 고향"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니, 고향은 정의하기 어렵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그 무언가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고향은 그 심성을 드러내는 상징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고향에 대한 뚜렷한 그림이 없는 나, 공간과 시간에 둘러싸인 이곳에서는 고향이 없는 나는 시에서 나온 그 "또 다른 고향"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가족들의 곁을 떠나 홀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씨름 한판을 벌이는 젊은이들에게는 사랑의 온기가 느껴지는 가족의 품이 고향일 것이다. 외국살이를 하면서 입맛이 안 맞는 음식들만 상대해 온 한국인들에게는, 보글보글 소리만 들어도 구수하고 얼큰한 김치찌개 한 그릇이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다. 전쟁과 분단의 고통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우리 민족이 다시 단합하는 통일이 자체가 고향이고, 차가운 현실로 말미암은 비감에 사로잡혀 동심(冬心)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순수하고 맑았던 동심(童心)에 돌아가 즐겁게 놀 수 있는 아련한 추억이 고향이다.

결국, 고향은 상처를 메워주고, 마음을 다듬어 주고, 편안함을 주는 것. 있으면 다정함을 느끼고, 없으면 그리움을 느끼는 것. 마음의 안정성을 되찾고 치유를 시킬 수 있는 것. 오랫동안 바라보고 늘 기다려 왔던 것. 고향을 계설(界說) 하는 것은 마치 우주의 끝에 도달하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지만, 이러한 정서, 풍성 그리고 마음보가 담겨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다 한 사람의 고향이라고 본다.

하지만 현실에 묻혀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회인들을 보면 마음이 한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잠시 그 무거운 짐을 내릴 수 있는 쉼터, 삶의 여유와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것은 어떨지,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어떨지, 지금이라도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어떨까?

고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 그러나 현실 속에서만 사는 우리는 고향을 구체화 시키고, 그것을 바라보며 자신을 달래고 있는 것이 아닐지. 이렇게 나는 짤막한 명상의 끝을 맺었다.

나는 고향이 없는 것도 아니며, 잃은 것도 아닌 아직 찾지 못했던 것이다. 마음의 고향,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일지라. 항상 그곳 그 자리에 있었던 나의 유일한 고향, 인제야 귀향길 따라 마음속으로 살포시 첫걸음을 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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