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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5역 '한국 알림이' 홍콩의 하루 너무 짧죠 - '홍콩한인여성회 기획이사' 윤보라 씨
  • 위클리홍콩 기자
  • 등록 2010-12-07 15:21:10
  • 수정 2010-12-16 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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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곳곳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열정'과 '패기'가 유..
지구촌 곳곳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열정'과 '패기'가 유일한 무기다. 홍콩에 사는 윤보라(여·33) 씨도 그런 젊은이 가운데 한 명이다. 홍콩한인여성회 임원·한국어강사·통역사·프리랜서 마케터·맛집전문가 등으로 활약하는 그녀의 '홍콩 24시'를 취재했다. [편집자 주]

 지난 27일 오후, 홍콩의 대형쇼핑몰인 '올림피안 시티 2'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홍콩한인여성회가 지난 5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Taste of Korea in Hong Kong'이라는 한식 세계화 이벤트다.

우리나라 태극기 문양의 고명을 얹은 500인 분의 대형비빔밥이 공개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 대형비빔밥을 주걱으로 비비는 진풍경이 연출되자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몸싸움을 벌이는 소동도 빚어졌다.

무대에서는 '김치 담그기'와 '떡 메치기', 'K-POP 공연' 등 현지인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진행됐고, 부스에서는 전통차와 인삼, 호떡, 떡볶이 등이 불티나게 판매됐다.

사흘 동안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홍콩시민과 외국인 관광객 등 모두 2만3000여 명이 다녀가면서 대성황을 이뤘다.

◈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낼 '팔방미인'

홍콩한인여성회에서 기획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윤보라 씨는 이 번 행사의 기획과 홍보, 무대공연 총괄진행을 맡았다.

"많은 임원 분들이 행사를 모두 마치고 부스를 정리하면서 펑펑 눈물을 쏟으셨어요. 홍콩한인여성회가 처음 치르는 한식 세계화 행사인 만큼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또 남모를 어려움도 많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요리의 천국인 홍콩에서 한식의 높은 인기를 확인할 수 있어서 가슴 벅찰 만큼 감격스러웠어요." 윤 씨는 홍콩에서 잘 나가는 한국어 강사이기도 하다.

홍콩 지하철 'Island Line'의 셩완(上環)역 근처에는 그녀가 운영하는 한국어 문화센터(TimeIsLife Culture & Language Center)가 자리 잡고 있다.

강의실 두 개에 화장실이 하나 딸려있는 아담한 공간이지만, 주말과 저녁시간에는 언제나 한국어열기로 가득하다. 칠판에는 그림이 그려진 한글 낱말카드가 빼곡히 붙어있다.

윤 씨는 홍콩시민들에게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지난여름 이화여대에서 개설한 '한국어교원연수과정'에도 참가했다.

"한국 드라마와 가요가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홍콩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어요. 이 때문에 한국어를 취미로 즐기면서 배우려는 홍콩 사람들도 늘고 있죠. 그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면서 우리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은 역시 보람 있는 일입니다."

다양한 세계의 음식문화와 와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는 '맛집전문가'라는 수식어도 늘 따라다닌다.

윤 씨는 홍콩주재 한국교민들과 홍콩과 마카오에 있는 맛집들을 찾아다니면서 친목을 도모하는 맛집 탐방 동호회인 '미인계(味人係/cafe.naver.com/hkmeeingei)'의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BEST Restaurants in 홍콩 & 마카오'(로사 권·윤보라·제니퍼 김 공저)라는 책을 내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취재와 사진촬영, 음식리뷰를 맡기도 했다.

이 밖에도 윤보라 씨는 현재 프리랜서 마케터와 통역사(중국어/영어), 홍콩 교민신문인 위클리홍콩 리포터 등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보통사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 중국어의 살아있는 전설, 송재록 교수와의 만남

그녀의 나이 이제 '서른셋'이지만, 지금까지의 삶은 누구보다도 치열했다. 그녀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 사건은 대학 1학년 때 송재록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송 교수는 지난 97년, 인하대에 처음 개설된 동북아국제통상전문가과정 오리엔테이션에서 '10년 뒤를 보고 중국어를 배워 두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환갑을 훨씬 넘긴 교수님의 강연은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렬했어요.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넘치는 카리스마, 그리고 이야기에 녹아있는 예리한 통찰력에 반했죠. 그 때부터 저는 중국어 공부에 매진했어요. 북경 어언대로 1년간 어학연수도 다녀왔고요."

경제학을 전공한 윤 씨의 과 친구들은 대부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금융권이나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윤 씨는 비록 보수는 작더라도 중국 현지에서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았다. 결국 그녀는 지난 2002년 한 휴대폰 부품제조설비업체에 입사해 중국 천진과 샤먼에서 4년 동안 근무했다.

윤 씨는 이 회사에서 공장 설립프로젝트를 2건이나 수행했다. 공장부지 확보에서부터 건설업체와의 계약, 각종 인·허가사항 처리, 그리고 현지근로자 채용까지 모두 윤 씨의 업무였다. 회사 규모가 작은 만큼 업무를 폭넓게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많았던 셈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영어'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중국어는 '중국 사람들보다 발음이 더 좋다'는 칭찬을 받을 만큼 자신이 있었지만, 외국기업과의 비즈니스상담 때마다 번번이 영어의 장벽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윤 씨는 과감히 사표를 내고 2005년 말 캐나다 밴쿠버로 1년간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녀는 미국 마케팅회사에서 인턴십까지 마치고 다시 귀국했다. 어학연수비용 3000만원은 자신이 직장생활하면서 저축한 돈으로 대부분 충당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주로 전시·컨벤션 통역사 일을 하며 새 직장을 물색했다. 중국어에다 영어까지 무장하니 자신의 통역업무에 대한 평가는 꽤 좋았다고 한다.

윤 씨는 이후 국내에 진출한 한 외국기업의 해외영업부를 거쳐 홍콩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으로 이직했다. 하지만 이 회사도 9개월 만인 2009년 1월 그만뒀다.

"외국계 회사는 출퇴근시간이 정확하고, 남녀차별도 거의 존재하지 않아 근무환경은 좋았어요. 다만 차가운 회사분위기가 늘 적응하기 힘들었죠.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임원들 간의 경쟁과 알력, 견제가 심했고, 이런 분위기는 부하직원들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어요.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나'하는 고민 끝에 결국 사표를 쓰고, 뭔가 즐거우면서도 의미 있는 일을 다시 찾기로 했어요."

◈ '죽음'을 간접 경험한 교통사고로부터의 교훈

윤보라 씨가 이처럼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을 박차고 나와 홍콩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 2002년에 겪은 아주 특별한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그녀는 2002년 6월, 중국 천진 외곽고속도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외국 바이어에게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고 동료들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트럭과 충돌한 것이다.

"트럭과의 충돌을 직감한 순간부터 실제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3~4초 동안 엄마, 아빠와 가족들 얼굴 그리고 친구들 얼굴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어요. 이대로 죽기 싫다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고요. 다행히 차는 심하게 파손됐지만 큰 인명피해는 없었어요. 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면서,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죠."

이 사고 이후 그녀는 몇 가지 삶의 원칙을 세웠다.

 ▲후회가 없도록 시간을 아껴 부지런히 살자.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 ▲누군가에게 항상 도움을 주며 살자 등이다.

윤보라 씨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다. 1층에는 한국음식점, 2층에는 한국미술갤러리, 3층에는 한국어학원등이 들어선 한국문화센터를 홍콩에 건립하는 것이다.

 "저는 한국과 중국을 잇는 훌륭한 문화전령사가 되고 싶어요. '음식'과 '예술'과 '언어'를 통해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서로의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훌륭한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제가 도울 수 있다면 아주 멋진 일이겠죠."

그녀는 남들에게 자신 있게 내보여줄 수 있는 '완성된 무엇'을 아직 만들지 못했다. 그녀의 삶은 여전히 좌충우돌 속에서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은 적어도 자기 인생의 당당한 주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노컷뉴스(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653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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