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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영 칼럼
위클리홍콩  2017/10/20, 15:13:43   
▲ 이학영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사람들은 정신없고, 게으르다”
“총장과 학장, 대학원장이 나에 대해 말하며 ‘골칫덩어리’라고 얘기하지 않은 건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이 학교에 내가 몸담아온 것은 힘든 사랑(tough love)이었다.” 올해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농담 속에 담아낸 그간의 외로움과 설움이 흠씬 묻어납니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주류경제학 이론에 반기(叛旗)를 들고 행동경제학을 개척해 온 그가 주류경제학의 본산인 시카고대에서 어떤 눈총을 받아왔을 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인간심리학을 경제학에 접목시킨 그는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고 무신경하고 게으른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가 더 많다”며 “정책 설계자가 옆구리를 치듯 가볍게 개입해서 개인들이 똑똑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해야 경제적 효용을 높일 수 있다”는 이론을 설파했습니다.

주류경제학자들은 그런 그를 변방의 ‘이단아’로 취급했지만, 적지 않은 정치 지도자들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가 2008년 펴낸 베스트셀러 《넛지(nudge)》를 읽고 감명받은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보수당 당수는 “집권할 경우 정책에 행동경제학을 적용하겠다”며 ‘넛지팀’을 구성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도 그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넛지 이론’의 성공사례가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미네소타주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라고 했던 납세 경고장을 ‘미네소타 주민의 90% 이상이 이미 납세의무를 이행했습니다’는 안내문으로 바꾼 결과 자진납세가 급증했습니다. “남들은 다 세금을 냈다”는 식으로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납세자집단’ 속에 묶이고 싶어 하는 심리를 이용한 덕분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은 10월11일자 A12면 기사 <"40여년 비주류 행동경제학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에서 세일러 교수의 수상소감을 상세하게 전했습니다. “40여년 비주류 취급을 받아온 행동경제학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다. 경제정책은 사람들이 바쁘고 정신없고 게으르다는 사실을 고려해 가능한 한 쉽게 설계해야 한다. 사람들이 뭘 하길 바란다면 그걸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라.”

세일러 교수가 개척한 행동경제학은 개인들에게도 유용한 교훈을 줍니다. 주식과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실수가 ‘자기 과신’이라는 게 그의 경고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사람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나는 괜찮을 것’ ‘나만 재미를 보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과잉확신에서 비롯됐다.” 치열한 도전을 통해 경제학에 ‘실용’의 변경을 개척해낸 세일러 교수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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